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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인과 농부를 겸할 수는 없을까?
글쓴이 농부이반 작성일 2018-01-11 17: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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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농부를 겸할 수는 없을까?



2018년을 나흘 앞둔 날 저녁, 이곳 홍성에선 조금 특별한 이벤트가 열렸다. 시골로 삶터를 옮긴 지 15년이 넘는 이들을 위한 소박한 기념식이었다. 송년회를 겸한 자리에서 9명의 귀농 선배들은 조촐한 선물과 액자를 받았는데 액자에는 각자의 삶과 꿈을 테마로 후배들의 헌사(獻辭)가 담겨 있었다.

선배들의 행보에 대한 위로와 감사가 각기 한 편의 시처럼 낭송된 기념식은 사회자의 재치가 더해져 온통 잔치 분위기였다. 모꼬지를 준비한 이들은 처음 글쓴이에게 공로패를 요청했지만, 고심끝에 히스토리(he-story)란 주제로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것들을 담아내려 애썼다.

어떤 이는 우리의 평범한 하루를 남루한 일상이라 했지만 시선을 조금 달리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감사패 하나라도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이따금 꺼내 볼 수 있도록 받는 이의 스토리와 감성을 더했다. 잘 아는 이들이 퇴직을 하거나 주어진 임기를 무사히 마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례로 군내 농업기술센터 어느 과장님의 퇴임전에는 퇴임식이 최고의 순간이 되도록 주변의 협조를 얻어 꼼꼼하게 준비했다. 먼저 농촌지도사로서의 자취를 ‘대한민국 농업의 방패’로 정하고 기념 선물중 하나는 방패의 형상과 비슷한 삽날에 밑칠을 한 다음 미술에 재능있는 후배의 협조를 얻어 캐리커쳐와 슬로건으로 멋지게 장식했다. 그리고 삽자루에는 함께한 이들의 축하와 응원의 글귀를 적었다. 답사 또한 퇴고를 거듭하며 감동과 울림이 부족하지 않도록 세심히 다듬었다.

흔히 삶을 노래한다는 표현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일상을 노랫하듯 사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필자 또한 귀농 이후 치열한 삶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만큼 숨가쁘게 살아왔다. 항상 일 있는 곳에 섰고 농사와 병행하며 후배들을 지원하느라 동동거렸다. 작년 겨울 송년회를 앞두고 지나간 세월을 되짚다가 문득 ‘시인과 농부를 겸할 수는 없을까’ 라는 청록파 박두진 시인의 영원한 화두가 내게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엄혹했던 시절 사상의 격류속에서 서정의 세계를 지키려한 시인의 깨달음과 질박한 농부의 일상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시속 100km라 불리웠던 어느 귀농인의 별명처럼 나 또한 좌우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며 내달렸다. 오죽했으면 동네 사람들이 자동차나 트랙터의 엔진 소리만 듣고도 내가 가까이 왔음을 증언할까? 할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해야했기에 농기계 종류와 상관없이 끝까지 악셀을 당기고 때로는 트랙터를 자동차보다 빨리 몰았던 터라 아찔했던 순간도 적지 않았다.

다행이 하늘이 도와 소소한 사고외에는 무사했지만 앞으로는 아내의 소원대로 속도 조절을 하고자 다짐했다. 돌이켜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고단한 일과에 매몰되어 해가 뜨고 지거나 작물이 꽃을 피우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무심히 지나쳐왔다. 캐내지 않은 열무와 갓꽃이 그렇게나 예뻤고 도시에서는 마주하기 어려운 풍경이 날마다 눈앞에 펼쳐졌는 데도 말이다.

지금껏 왜 그리 살아왔냐는 물음에는 궁색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외에 다른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는 창업자금을 비롯한 귀농지원책이 굉장히 미비해 하우스에 건 귀농은 맨땅에 헤딩이라는 현판처럼 우리 부부는 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논과 밭에 엎드릴 수 밖에 없었다. 새내기 시절엔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지 때로 아내가 과부될까 두렵다고도 했다.

지금은 송년회의 주인공들처럼 들일을 전쟁하듯 무섭게 치고나가는 후배도 보기 어렵고 여유가 있어 보이지만 초창기에 형제보다 더 끈끈했던 동료애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때는 다들 벌이도 시원찮아서 집들이에 쌀이나 수수 따위 곡물을 들고갔어도 후배들을 환영하는 마음만은 지극히 컸다.

오늘도 후배를 안내하느라 한참이나 공을 들였지만 아직은 이 일이 힘들지는 않다. 더욱이 오늘 만난 이들은 귀농초에 한 번 만났던 부부다. 파주에서 부안을 거쳐 이곳에 오는 동안 그이들의 머리칼에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새겨졌다. 다른 이가 보기엔 아내와 나도 비슷할 게다. 서로의 얼굴과 손만 봐도 파노라마처럼 시간의 흐름이 눈에 선하다.

바라건대 올 한 해만이라도 부산한 농심대신 자연과 삶을 관조하는 시인의 마음이고 싶다. 시골에 사는 멋과 맛을 시절에 맞춰 읊조리는 농부 시인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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