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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농사, 세상을 살리는 일...류승아
글쓴이 농부이반 작성일 2019-02-12 08:56:01

농사, 세상을 살리는 일

 

- 가을 밭 풍경 -

 

배추는 지름이 한 뼘이고 쪽파는 키가 한 뼘이고 무는 키가 반 뼘이다. 당근은 잎이 하늘거리고 갓과 열무는 갓난 싹이고 대파는 늙어간다. 들깨는 꽃이 피기 시작했고 부추는 단아한 꽃을 피웠고 바질꽃은 한창이다. 오이는 한 줄기에서 새로 태어나고 또 늙어가고 호박은 몸집을 웅장하게 키웠고 참외도 둘씩 짝지어 달렸다.

 

고추는 가지가 부러질 만큼 달렸지만 빨갛게 익어가는 속도가 더뎌지고 오크라는 하늘을 찌를 듯이 뾰족뾰족 솟아나고 가지는 비맛을 보더니 팔뚝만큼 굵어졌다. 단수수는 키가 내 두 배만큼 자랐고 수수는 고개를 숙였고 늦깍이 옥수수는 쓰러질듯 버티고 섰다. 땅콩은 숱 많은 빠마머리 만큼 잎을 무성하게 키웠고 콩은 노랑 잎이 들기 시작했고 고구마는 힘겹게 번지고 있다.

 

봄에 심어 씨가 한창 익도록 두었던 루꼴라, 고수, 아욱, 상추 자리에 쪽파를 심었는데 쪽파 사이사이에 그대로 싹이 올라왔다. 근대는 봄에 심어 지금까지 싱싱한 잎을 꾸준히 내어준다. 한때 벌레로 고생을 좀 했지만 늙은 잎을 꾸준히 따주었더니 환생하듯 새롭게 푸르고 싱싱한 잎을 올려준다. 자연의 경이로움!

 

십여 년 전 큰 아이를 가졌을 때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연에서 흙 밟으며 자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여겼어요. 그렇지만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던 남편은 일을 버리고 농촌으로 갈 만큼의 용기가 없었습니다. 저는 적어도 마당 있는 집에서라도 살고 싶어 했지만 가난한 신혼부부가 도시근교에서 아파트를 벗어나기란 힘겨운 일이었지요. 겨우 자그마한 텃밭을 빌려 소박하게 농사지으며 사는데 만족해야 했어요. 어느덧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저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시골살이는 영영 못 하겠구나!

 

영덕에서 열렸던 탈핵 반대집회에 다녀온 친구가 그곳에서 만난 홍성 녹색당 사람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홍성에 한 번 놀러 가자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와 홍성에 한 번 다녀갔을 뿐 연고가 없었지만 홍성을 선택하게 된 것은 풀무학교를 중심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진 홍동이라는 마을공동체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고 달래 아이 6학년 때 홍성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두 해 농사를 지었어요. 처음 한 달 정도 아이는 힘겨워 했지만 이내 새로운 친구들과 환경에 적응하여 지금은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배운 태권도 수업을 열어보기도 하고 헌책방에서 피아노연주를 하고 용돈을 법니다. 밴드와 댄스동아리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 무대에 오르기도 합니다.

 

홍성으로 오기 전 저는 환경과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거나 파업하는 노동자들의 싸움을 지지하며 밥으로 연대하는 협동조합 밥차에서 활동했어요. 또 세월호와 같은 여러 사회문제에 목소리를 내었죠. 또 제가 살던 곳에서 벌어진 난개발 문제로 마을사람들과 2년 넘도록 한 기업과 싸웠습니다.

 

그렇게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다가 더 잘 살아보겠다고 나만 홀로 빠져나오자니 배신자가 된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래서 나를 합리화 해보겠다며 결심한 것이 농사지어 그 농산물을 도시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전부터 갖고 있던 농사지어 밥차에 농산물 연대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마음 불편하게 이루게 된 것이지요. 내가 농산물을 보내는 밥차는 모두 세 곳입니다. 십시일반음식연대 밥묵자’,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평등세상을 향한 연대 '집밥'. 곳곳에서 애쓰시는 밥연대 활동가들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농산물과 함께 보냅니다. 이제 하나의 꿈을 이루었고 다음 꿈을 노래하게 되었으니, 꿈 꿀만 하지 않은가요!

 

처음 홍성에 와서 인연이 닿은 곳은 자연재배 텃밭정원 모임이었어요. 여럿이 함께 일하는 텃밭정원 모임에서는 함께 일하는 재미는 물론이고 각자 싸온 도시락을 풀어놓고 풍성함에 감탄하는 먹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텃밭에서 자연스레 자란 유채며 쑥, 부추, 민들레 잎 뜯어 쌈장을 곁들이면 보약이 따로 없지요. 그리고 이환의님의 도움으로 내 농사를 짓게 되었어요. 첫해에는 쌀, 고구마, 참깨, , 배추, 무 농사를 지었는데 제가 먹고 남을만한 것은 모두 도시에 보냈어요. 쌀은 제가 먹을 것도 안 남기고 모두 보냈습니다. 밥차, 세월호 유가족, 환경운동가, 반올림, 형제복지원, 용인 지곡동 등 부당함에 맞서 싸우시는 분들과 평소 고마웠던 연대자들에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부자가 된 듯했어요.

 

올해는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의 밭을 빌렸어요. 밭 빌려주신 할머니는 제가 풀만 키운다고 갈 때마다 안타까워 하시는데 찹쌀떡이나 먹을 것을 챙겨 가는 날은 아무 소리를 하지 않으십니다. (^^) 하루는 곡식도 사람이랑 똑같혀~ 밥을 줘야 크지~ 거름 좀 너어! 배추는 속이 차야혀~ 안 그럼 먹을거 없어~’ 하시더니 양동이와 모종삽을 갖다 주시며 거름포대 찢을 가위가 필요하냐고 물으셨어요. 밭에는 거름포대가 쌓여 있지만 자연농법을 지향하는 저는 거름을 쓰지 않습니다. ‘오늘 깨 털고 고추 좀 따고요. 거름은 내일 넣을께요.’ 라고 얼버무리고는 배추 주위 겉흙에 거름을 뿌린 흔적을 만들고 거름 반 포대는 따로 빼돌려 할머니를 안심시켜드렸어요. 그래야 오랜 세월 풀은 거름만 잡아먹으니 뽑아버려야 할 것이고 작물이 자라려면 퇴비나 비료를 반드시 넣어줘야 한다고 생각해 오신 분께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할머니의 마음을 배려해 가며 나름 노력한 탓인지, 여자 혼자 농사짓느라 아등바등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러신지 모르지만 도지 이십만 원을 드렸더니 십만 원을 돌려주시면서 내년에는 도지도 필요 없으니 나 죽고 나서도 계속 농사만 지으라고 하십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함께해 오신 밭에 대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할머니 밭에서는 갖가지 품종에 도전해 아주 풍성했어요. 씨앗도서관에서 빌린 씨앗을 포함해 서른 가지 정도.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따로 장을 보지 않으며 한 해를 살았다는 거에요. 가끔 달걀, 두부, 빵과 과일 정도만 사먹었어요. 도시에 살았으면 하루하루 찬거리를 다듬으며 비닐쓰레기를 많이도 만들어냈겠지만 밭에서 따오는 찬거리는 착하지요. 도시에서는 찬거리 사러 부러 차타고 나가거나 차가 와서 배달해 주었지만 밭으로 가는 길은 자전거면 충분합니다.

 

제 농사는 많이 부족하지만 자연재배 방식을 따르고자 합니다. 땅을 갈지 않고 물을 주지 않으며 거름을 넣지 않고 비닐을 씌우지 않습니다. 유기농보다 더 까다로운 농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렇게 까다로운 농사를 짓는지 묻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면 저는 지구 환경오염에는 농업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도시에 살 때는 날마다 미세먼지 수치를 들여다 보았는데 전라도 초미세먼지 수치가 매번 서울과 수도권과 비슷하거나 높게 나와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인구도 산업시설도 적은 전라도에서 왜 그럴까요? 알고 보니 농업용 퇴비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만들어낸 질산염과 축산업에서 나오는 암모니아가 바로 초미세먼지 성분이더라구요. 또 땅속으로 흘러든 거름성분이 지하수와 하천을 오염시켜 사람이 마실 수 없는 물로 만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퇴비 쓰는 것이 꺼려집니다.

 

봄에는 여기저기 돈으로 사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풀들이 많습니다. 냉이, , 개망초, 원추리, 두릅, 오가피나무순, 엄나무순, 미나리, 돌나물, 달래, ... 봄이 참 좋습니다! 어느 봄날 늦은 오후, 자전거 바구니에 모종 얹어 바람 가르며 밭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선배농부님 측은한 눈빛으로 '퇴근해' 하십니다. 그러나 농부의 출퇴근 시간을 정하는 건 오직 자연뿐. 비오기 전 모종들을 밭으로 모셔야하죠! 주경을 마치고 퇴근하면 야독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매주 불날마다 열리는 녹색평론읽기모임은 귀농 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자연재배논농사 모임에서 손으로 벼농사를 지었습니다. 염수선과 열탕소독, 그리고 발아를 기계나 약품을 쓰지 않고 손으로 합니다. 역시 손으로 모내기 하고 두 차례 낫으로 풀을 벱니다. 벼가 고개를 숙이면 낫으로 베어 묶어 볏널에 걸쳐 말리고 발탈곡기로 텁니다. 후두둑 후두두둑 벼 떨어지는 소리가 재미지죠. 손으로 문질러 낱알이 모두 떨어지게 해야 하고 검불을 바람에 날려야 하고 도정을 해야 비로소 쌀을 얻습니다. 그 옛날 기계 없이 쌀농사 짓던 농부들의 노고를 떠올리게 만드는 벼농사 체험이었지요. 어찌나 힘들었던지 내년에는 다시 못할 것 같습니다. 토종 종자를 지키고 옛 농사 방식을 이어가려는 금창영님의 노력과 열정이 아름답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각자 다른 곳을 응시하며 살아간다면 시골 사람들은 서로 마주보며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부부가 귀농 첫해 논을 빌려 농사를 지었는데 기계가 들어가 수확할 수 없을 정도로 논이 질퍽합니다. 둘이 몇날 며칠을 벼 벤다며 고생하고 있으니 오지랖 넓은 선배 농부가 앞장서 이사람 저사람 모아 다함께 돕습니다. 부부는 고마움과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나 몰라라 하지 않는 따뜻함이 참 좋습니다.

 

들깨를 터는 날 일곱 살 아들이 제 곁에서 놀다가 들깨를 한 움큼 집어 먹어 보더니 고소한 맛을 알아채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입 가득가득 넣어 먹더니 옷 주머니에도 한~주머니 담고 신발에도 담으려 해 말렸습니다. 아이 입속에는 수 백 개의 들깨와 수십 마리의 벌레가 들었겠지요. 들깨를 터는 동안 그 향에 황홀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이가 '어디선가 들깨향이 나요~' 합니다.

 

밭에서 마주치는 생명들은 또 어떻습니까? 고춧잎을 따다가 꽃이 싱싱하고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벌이 날아들어 제 사진에 찰칵 찍히고 말았죠. 자전거 타고 가는데 강아지 한마리가 졸졸 따라와 논에까지 들어와 놀다 갑니다. 어느 날은 너구리인지 오소리인지 뭔가가 후다닥 밭을 가로질러 갔고 논길에서 고라니는 심심찮게 만납니다. 밭에 남겨진 그들의 흔적도. 개구리도 만나고 메뚜기도 만나는 날들이 소중합니다. 도시에서는 누리지 못하는 아름다움이죠.

 

밥차에 보내기 위해 알타리를 뽑아 상자에 담습니다. 도시의 마트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여러가지 모양과 크기의 알타리가 가지런히 담깁니다. 같은 날 같은 씨앗을 뿌렸지만 자라는 모습은 제각각이지요. 농사를 지어보니 모든 작물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밭의 실상은 이렇지만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팔수밖에 없으니 농부는 비슷한 것들끼리 일일이 골라 담아 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지요. 너무 작거나 너무 커도 밭에서 그냥 버려집니다. 소비자의 기호 때문에 농산물이 낭비되고 또 이 낭비를 위해 농부는 선별작업이라는 품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가지런한 것들만 세상에 내놓아 소비자의 눈을 길들여서일까요? 소비자가 예쁜 것들만 사가고 못난 것은 시장바닥에서 시들게 내버려둔 탓일까요?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농부가 되고 보니 소비자들에게 의식 있고 책임 있는 구매를 부탁하고 싶어집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기르고 가르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성격이 좌우되듯이 주부가 어떻게 장을 보는가에 따라 농업과 상업의 성격도 좌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저래 여자들이 현명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공부해라 옥죄고 성공해서 돈 많이 벌어 잘 살아라 가르치지 말아야 하듯이 가지런하고 잘난 것만 골라 사지도 말아야 합니다. 농부는 잘난 것 못난 것 고르지 않은 채 시장에 내놓을 용기가 필요하지요.


그런데 막상 농부가 되어보니 이게 참 어렵습니다. 옥수수 키웠던 밭에 옥수수 밑둥이 있는 채로 경운하지 않고 심어서 그런지 돌 때문인지 재미난 모양의 알타리가 더러 있지만 저절로 보기좋은 가지런한 것만 골라 담게 되니 말입니다.

 

일을 하다보면 힘들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남자처럼 힘이 세면 좋겠고 남들처럼 튼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 많이, 더 오래, 더 빠르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다 이내 마음을 잡습니다. 세상은 느리게 조금씩 천천히 살아가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다시 떠올립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남달리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미래 아이들에게 물려줄 지구환경에 걱정이 많았어요. 그래서 새로 물건을 사는 것과 그로 인해 생기는 비닐과 상자와 같은 포장재를 비롯해 일회용을 쓰고 지구에 쓰레기 하나 더하는 것에 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농사지으며 사는 삶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도시에 살 때부터 세제를 안 쓰기 위해 마수세미를 직접 만들어 썼어요. 주위에 알려보았지만 도시에서는 큰 호응이 없었는데 홍성에서는 마수세미가 관심을 받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세제가 필요 없고 쓰레기도 만들지 않는 천연재료 마수세미 뜨는 법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저는 지금도 꾸준히 떠 나누기도 하고 팔기도 하며 알리고 있습니다. 지역화폐 '' 으로 장보는 마을장터가 열렸을 때는 수세미를 팔지 않고 직접 떠보는 체험만 하기로 했는데 어린이 손님들이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수세미를 사겠다니 달리 방법이 없어 팔기도 했지요. 생산자 장터에서 판 수세미 판매금액의 절반은 환경운동연합에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잔소리쟁이, 독재자이자 공공의 적입니다. 남들만큼 넉넉하게 에너지를 쓰지 못하게 하니까요. 그 무더웠던 올 여름에도 에어컨 없이 버텼습니다.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나온 저희 집 전기요금이에요.

11,09021,13031,44041,89051,430

61,13073,66084,07092,680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듣습니다. 비결이 뭐냐고요. 제 답은 단순합니다. 바로 마음입니다. 마음이 움직이면 불가능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에너지 쓰고 내는 돈의 무게는 저마다 다 다른 듯합니다. 제 욕심으로는 이 돈도 더 줄이고 싶은걸요. 에너지를 포함해 소비를 거부하는 것이 독재라면 저는 계속 독재자가 되겠습니다. 아름다운 독재자 말입니다.

 

시골은 인구밀도가 낮으니 무더위에도 시원한 계곡이 한적합니다. 아이들은 가재 잡으며 물놀이에 행복하고 어른은 배 깔고 누워 책 읽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지요. 지구온난화를 대비해 다른 대륙으로 이주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제 생각에는 시골살이면 됩니다. 자급자족하며 에너지 덜 쓰고 쓰레기 덜 만들며 살아야죠. 우리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로 빗어진 환경재앙에 책임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구를 지키려면 아끼고 덜 쓰고 덜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먹는 습관도 바꿔야 합니다. 육식보다 채식, 수입보다 지역 농산물, 남김없이 먹기, 손수 농사지어 먹기. 우리가 아무런 책임감도 느끼지 않은 채 먹어치운 고기 때문에 오염된 이 땅을 우리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고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축산으로 오염된 환경만 생각한다면 고기를 찾는 식욕은 유죄입니다. 덜 먹거나 먹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많은 것을 만들어 소비하고 너무 많은 동물을 키워 잡아먹는 것에 대해 이제는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멈춰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유명한 누군가가 말했다죠. '한 평의 농사를 짓는 것이야말로 매우 가치 있는 환경운동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농사를 지어 일부만이라도 자급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포장재 만드는데 드는 자원(보통 석유와 나무죠)과 에너지(석탄, 원자력 발전)를 줄일 수 있고

· 쓰레기를 만들지 않아요.

· 트럭으로 실어 나르지 않으니 에너지(석유와 노동)를 줄여요.

· 매장에서 상품관리를 위한 품(노동)과 에너지(전기)를 줄이고

· 진열대 냉장과 조명 등에 드는 에너지(전기)를 줄일 수 있어요.

· 다듬고 남은 껍질이나 먹고 남은 것은 퇴비로 만드니 음식쓰레기 수거(석유와 노동)와 처리비용(전기와 노동)도 줄일 수 있어요.

농사는 적극적인 환경운동이 맞지요?

 

종이컵과 비닐팩 등 일회용을 쓰지 않고 천생리대를 쓰며 새 옷을 사지 않고 마을 공동옷장에서 가져다 입으며 사는 저를 보며 여성농업인센터장님이 마을의 환경교육과 쓰레기 분리배출 모니터링 작업을 함께 하자며 제안해 주셨어요. 시골은 풍요롭고 여유로워 여러 가지로 도시보다 살기 좋은 곳이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쓰레기 소각입니다. 여러 마을 이장님과 부녀회장님을 만나 쓰레기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어요.

"사람들에게 백날 얘기 혀봐야 소용없어~ 태우는게 속 편허니께~"

비닐, 페트, 스티로폼은 물론이고 커다랗고 빨간 고무다라도 태우신다고요.

"이렇게 큰 것을 어측헐 것이여~ 태우야징.."

태울 때 골이 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태우신다고요. 편허니께~

"도시처럼 시골도 청소차가 구석구석 돌아대녀야혀~ 시골이 도시보다 환경적 혜택이 더 적다니께~"

보행기 끌고 다니는 할머니도 농사는 지으시는데 꽤 무거운 밭 덮는 비닐 쓰레기를 옮길 방법이 없으니 그냥 태우신다고 해요.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농사일로 기나긴 하루를 끝내고 누우려고 옷을 벗어보니 세상에나 양쪽 무릎이 세상 구경을 나와 있습니다. 지지리궁상 반소비주의. 무엇이건 물건 사는 건 아주 질색인 사람이라 무릎 나온 내복을 보고 슬슬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어디서 어떤 것을 살지 신중하게 고민하는 사람이라 더 그렇지요. 갖고 있는 내복들이 모두 진작 버렸어도 아깝지 않은 것들이라 이참에 두어 벌 사야할까 봅니다. 지구를 덜 괴롭히는 것으로 똑똑하게 잘 고르고 싶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이 생각나면 후딱 사버리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의 소비가 발암물질 미세먼지를 만들었고 미치도록 뜨거운 여름을 가져왔고 미세플라스틱 천일염을 낳았다고요. 가끔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의 아이의 아이가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상상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살았던 시절과 비교해 보면서요. 우리의 삶이 다른 이에게 이로움이 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중립적인 삶'이라고 할까? 적어도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시골로 이주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것을 걱정해 귀농의 꿈을 꾸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어요. 멀쩡한 숲을 밀고 대궐 같은 집을 지어 가문 날 잔디에 물 뿌려가며 살려고 한다면 귀농이나 귀촌은 맞지 않습니다. 도시보다 이웃이 살아있는 시골에서는 그 문화에 섞이지 못하고 이질적이라면 함께 살아가기 어렵지요. 그곳의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고자 한다면 적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하늘은 몇 개일까요? 저마다 다른 수의 하늘을 갖고 살아갑니다. 각자 올려다 보는 수만큼의 하늘을 갖고 살지요. 시골에 사는 즐거움의 으뜸은 단연코 탁 트인 하늘입니다. 날마다 다른 모습으로 감동시키지요.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을 준다 해도 수만 가지 하늘 풍경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의 아름다움을 날마다 볼 수 있다는 것! 이것은 이제 행운이나 사치 같은 일이 되어버렸지만, 실은 모두가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입니다. 도시 사람들은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하늘에 이런 아름다움이 숨어 있다는 걸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람 살 곳은 시골입니다. 시골에서 누리는 풍요로움 뿐 아니라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아도 그렇습니다. 도시의 복잡한 삶을 버리면 당장 일자리를 잃고 굶어 죽지는 않을까 두렵기는 하겠지만 노숙자는 도시에서만 볼 수 있고 쪽방촌도 빈민가도 도시에만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지요. 도시는 야생동물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도 그렇지요. 도시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가 있다면 시골의 문을 두드려보라 말해주고 싶습니다. 남들처럼 떵떵거리며 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습니까? 날마다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사람이 더 잘사는 것 아닐까요?

 

콘크리트혼화제를 만드는 아주 못된 기업과 싸워온 지 4. 제가 살던 용인시 지곡동 사람들은 결국 이기고야 말았습니다. 저에게 걸려있던 명예훼손 형사재판도 판결을 앞두고 있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법률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건어물을 파는 지곡동과 귤을 파는 강정마을에 연대하며 마지막 가을걷이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김장철을 앞둔 배추와 무, , 쪽파를 보면 마음이 흐뭇합니다. 김치냉장고 없는 저는 올해도 스티로폼 상자와 냉매로 재활용 김치냉장고를 만들어 김장김치를 시원하고 맛깔나게 익혀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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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반 (2019-02-12 08:57:48)
저희 홍성으로 귀농한 류승아님의 글입니다